[학교2013 지훈x민기] 구름 단편들
















- 지훈아. 선생님이 직업학교 조금 더 알아봤는데... 


꼭꼭 여닫은 창문 밖에서 이 겨울과는 안 어울리는 따뜻한 바람이 연거푸 쏟아진다. 요 며칠 폭설이다 간만에 개인 날씨는 교실 바닥에 샛노란 볕을 빈틈없이 뿌려놓았다. 그 볕을 카페트처럼 밟고 앉아있자니 졸음이 남실남실 밀려든다. 영어선생님의 조용한 말투는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공기중으로 새하얗게 흡수되어 버린다. 초록색 사물함에 기댄 채로 느슨하게 앉은 지훈은 졸린 눈을 연신 비비적댔다. 옆에 앉은 정호와 이경은 물론이고 제 앞이 온통 텅 비인 것처럼 전멸이다. 책상에 고개를 박은 까만 머리통들이 마치 해안가에 듬성듬성 박혀있는 돌 같다. 도무지 못 알아듣겠는 선생님의 영어지문읽기는 계속이었다. 탐이 뭐라는지 존이 뭐라는지... 귀에 박히는 게 없으니 펼쳐놓은 교과서도 어려울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펼쳐놓은 장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 


결국 참다못해 하품을 쩍 해버리고 만다. 입맛을 쩍 다시는데 입까지 헤 벌리고 옆에서 잘만 자던 이경이 별안간 어깨를 들썩거리며 경련을 한다. 그러더니 앞머리를 벅벅 긁고는 끙끙대며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다시 잔다. 어제 밤 늦게까지 고깃집 알바를 했다더니 벌써 5교시 째 쥐약 먹은 개마냥 정신을 못 차리고. 힘들다면 이 쪽도 만만찮은데 지훈은 차라리 하품을 하고 괜히 책을 들추고 하면서 잠을 깨우면 깨웠지 앞에 퍼질러 자는 놈들처럼 같이 잘 수가 없었다. 


"......" 


무더기로 엎어진 몸뚱아리들 사이로 보이는 꼿꼿한 등. 예전에 마냥 학교를 빼먹고, 그나마 와서도 자기 일쑤이던 시절엔 몰랐던 광경이다. 지훈은 요즘 저 반듯하게 세워진 등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 등은 이 학교 안에서 단 한 번도 책상 위로 엎어진 적이 없다. 


"......" 


선생님이 말하는 걸 들으며 책에 줄을 긋는다. 동그랗고 단정한 머리통이 조금 숙여지고, 형광펜을 쥔 손이 선을 가로로 끊김 없이 긋는다. 4분단 쪽으로 걸어가는 선생님을 향해 머리를 조금 돌린다. 방금 전 책에 줄을 그었던 형광펜 꼭지를 입술 끝으로 깨문 옆얼굴이 보인다. 책을 한 번. 선생님을 한 번. 그리곤 선생님이 무어라 해설을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펜을 바꿔들고 슥슥 글을 써내려간다. 


"......" 


지훈은 저도 모르게 쳐다보고 있다가, 꼭 나쁜 짓을 들킨 애처럼 교과서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대충 아무 곳이나 줄을 직 그었다. 움직임도 크지 않은데 한 번 시선이 꽂히면 영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저렇게 집중해서 공부하는 애는 처음 봐서 그런가. 하지만 저 꼿꼿한 등을 보고 있지 않으면, 이미 많이도 놓쳐버린 수업 진도는 한낱 자장가일 뿐이다. 교과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는 게 없으니 [지훈아 일단 모자라는 부분은 보충수업으로 많이 보강하도록 하자. 근데 일단 수업시간엔 깨 있어야 해. 알든 모르든 듣는 게 중요해. 알았지?] 하는 정쌤 부탁도 소용이 없다. 다행히 깨있긴 한데 그 집중 상대가 책이 아니라... 에휴. 모르겠다. 그래도 뭐 안 자는 것만으로도 용한 거 아닌가? 지훈은 애꿎은 뒷머리만 벅벅 긁었다. 















"이번 수업시간엔 우리반 친구를 주제로 시를 써보도록 하자." 


영우가 시쓰기가 좋다고 한 이후로 보충반에선 종종 시를 쓰는 시간이 끼워지곤 했다. 겉으로 보면 다들 별 말 없이 따르고 있는 것 같아보였지만 오늘은 또 뭐라고 쓰고 집에 갈까 고민하는 모습들이 역력해보였다. 옆에 앉은 정호가 대놓고 시를 또 쓰냐며 길길이 날뛰어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아씨 뭐라고 쓰냐." 
"난 너를 주제로 쓰고 넌 나를 주제로 쓰면 되지." 
"그럴까? 그럼 제목 이이경. 이이경은 참 병신같다. 끝." 
"아 오정호!!!!" 


옆에서 정호와 이경이 연신 투닥거리고 난리가 났다. 지훈은 야 나 오정호랑 안 할래 이지훈 너 나로 써!!! 하고 옆에서 징징대는 이경을 정호의 쪽으로 쭉 밀었다. 낄낄대다가 또 질색하다가 상욕을 늘어놓다가 다시 낄낄대는 둘을 저 쪽으로 치워버리고 나니 책상 위에 놓인 a4 용지가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다 쓴 사람은 제출하고 바로 집에 가도 좋아." 


선심썼다는 듯 정쌤의 한 마디가 떨어지자마자 나란히 창문 밖만 쳐다보고 있던 남순과 흥수 머리가 종이에 박힌다. 그리고는 뭐라도 당장에 쓸 것 처럼 펜대를 열심히 돌린다. 그 둘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정쌤이 다시금 한 마디를 얹는다. 대신 라면이 먹고싶다는 더 이상 안 돼.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이번엔 조금 더 '시' 답게 써보도록 노력하자. 이번엔 남순과 흥수의 머리가 동시에 푹 꺼진다. 소리 없이 내뱉은 한숨인데 바로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 


멍하니 샤프만 굴리고 있기는 지훈도 매한가지였다. 여느 누구 하나 쉽게 첫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지훈은 주제를 누구로 할까부터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호? 이경이? 하지만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사이를 시적으로 포장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호가 만화 원피스 빠돌이라거나 이경이 연애고자라는 사실을 시에 녹여 썼다간 다음 날 어디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옆에서 히히덕대고 있는 놈들을 주제로 쓰자니 a4 용지 한 가득 장난 가득한 욕지거리를 도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하다. 

그러다, 


"...아." 


불현듯 생각난 싯구에 지훈이 놀란 눈을 했다. 아 씨바, 사실 나 알고보니 시 천재 아니야?! 옆에서 여전히 왱알왱알 거리는 애들을 뒤로 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슥슥 써내려갔다. 그냥 그 애를 보고 평소에 느꼈던 점을 쓰려고 하다보니 어렵게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실타래가 술술 풀리는 것 같이 시가 써졌다. 지훈은 마지막 온점을 찍고 가방을 어깨에 둘러 맨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이경의 머리가 쪼르르 따라올라온다. 


"야 이지훈. 너 벌써 다 썼어?" 
"엉." 
"야야 나도 좀 베껴쓰자." 
"이이경. 그렇게 꼼수부리면 집에 안 보내준다." 


어느 새 책상 바로 옆에 다가와 서 있는 정쌤이 으름장을 놓자 지훈의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이경이 아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지훈은 그런 정쌤에게 종이를 내고서 꾸벅 인사를 했다. 정쌤은 행여 시를 쓰는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지훈에게 소리없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머."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훈의 종이를 읽어내린 정쌤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학교 정문을 향해 걷는데, 저 앞에 요즘 들어 무척이나 익숙해진 등이 보인다. 깔끔한 뒷모습만큼이나 걷는 모양새도 단정하기가 그지 없다. 지훈은 잠시 멈춰서서 눈을 도로록 굴렸다. 삥을 뜯거나 학교를 땡땡이 치는 것 처럼 나쁜 짓을 할 때 말고 이렇게 빠른 판단을 해 본건 난생 처음이다. 앞서 걷는 등보다 보폭을 크게 해 푹푹 걸어가서는 동그란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야. 김민기." 


그러자 한 뼘 정도 작은 머리통이 슥 돌아다본다. 같은 반이긴 해도 접점이 전혀 없어 그저 데면데면하게 대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반기는 얼굴이 제법 밝다. 위로 씩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 되려 놀란 지훈이 이름을 불러놓고서 잠시 어벙거렸다. 


"어, 이지훈. 지금 집에 가?" 
"...어." 
"오늘 보충반 수업하는 날 아니야?" 
"이, 일찍 끝났어..." 
"아..."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그 찰나가 너무도 길어 지훈은 잡았던 어깨를 천천히 놓았다. 머쓱해져서 그 손을 바지주머니에 꽂고나니 이젠 부른 것도 후회가 된다. 으아. 


"너는?" 
"나 오늘 학원가는 날이라서 먼저 나왔어." 
"요즘도 엄마가 데리러 오시냐?" 


아차, 하는 순간 말실수가 튀어나와버렸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비꼬려는 게 아니라, 아니 그냥, 너는 늘 엄마가 데리러 왔었으니까, 오늘도 오시나 해서, 아씨. 아 씨발. 이지훈 대가리는 뭣하러 들고다니냐 악세서리도 아닌데. 민기엄마와 민기의 사이를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는 2반 아이들에게 [민기엄마] 는 그 단어만으로도 비꼬거나 놀리려는 목적이 아니면 암묵적인 금기어에 속했다. 그리고 지훈은 그 동안 숱하게 놀려먹었던 민기에게 처음으로 미안하고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다른 때는 사실 비꼬려고 일부러 너네 엄마 얘기하고 그런거지만, 오늘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거라고! 

그러나 미안한 시야에 들어오는 민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표정이 밝다. 


"요즘은 엄마가 데리러 안 오셔." 
"...아..." 
"앞으로도 아마 안 오실걸?" 
"...기분 되게 좋아보이네." 


화가 났는데 웃는 척을 하는건가, 정말 기뻐서 웃는건가 긴가민가해 지훈이 민기의 대답에 조심조심 맞장구를 쳤다. 어지간해선 남 눈치 안 보는 자신이 이런 범생이 눈치를 보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지금 당장은 그냥 민기가 화난 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더불어 이 놈의 주둥이 버릇을 잘 들여야겠다는 생각도. 


"야 이지훈." 
"...어?" 


마주보고 이야기하던 민기가 뒤를 돌아 정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 뒤를 지훈이 두 발자국 뒤에서 따라 걸었다. 야자를 막 시작한 때라 학교를 빠져나가는 건 둘 뿐이었다. 덕분에 민기가 뱉는 말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끔, 니가 참 부러웠거든." 
"......" 
"구름같이 이리 흘렀다, 저리 흘렀다.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아무것에 상관 않고 둥둥 떠다닐 것 같아보여서." 
"......" 
"근데 아무리 봐도 구름처럼 둥둥 배회하는 것 보단," 
"......" 
"이렇게 학교에 콕 박혀있는 게 더 보기 좋은 것 같다." 
"......." 


지훈은 걷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정문을 벗어난 민기가 서서히 뒤를 돌았다. 


"공부할 때 힘든 거 있음, 언제든지 물어 봐. 내 뒷통수만 쳐다보고 있지 말고." 
"......" 



약 세 걸음 정도를 떨어져선 민기가 웃는다. 어깨에 맨 가방끈을 야무지게 쥐고. 자꾸만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지훈이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더 이상 삥을 뜯지 않고, 수업시간에 깨어있고, 심지어 집중도 하고 있고. 그리고.



"...어, 어떻게 알았냐?"

"뒷통수 뚫리는 줄 알았거든."



아씨... 밀려드는 창피함에 지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뭐 그렇게 대놓고 쳐다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대냐. 툴툴거리자 그걸 또 어떻게 들었는지 맨날 자는 애가 빳빳이 앉아있으니 시선이 갈 만도 하잖아. 한다. 


공부가 어렵고, 너에게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진짜 쬐끔, 아주 쬐끔 해 본 생각이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아무 글이나 끼적이고 있으면서 든 생각은 네가 참 신기하단 것이었다. 쟨 어떻게 졸지도 않고 저렇게 앉아있을까. 어떻게 전교권에 들고 어떻게 부모가 그렇게 감싸고 돌고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고 또 어떻게. 


어떻게 저렇게 살며시 웃을까.



"아, 나 버스 올 시간 다 됐다. 잘 가, 내일 보자!" 


학교 담벼락을 따라 민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둥그런 눈을 끔뻑거리는 지훈의 머리 위로 모처럼 따뜻해진 바람이 불었다. 이건 정말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볼 안 쪽이 쥐가 난 것 같이 자르르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는.














구름. 이지훈. 
우리 반에는 구름이 있다. 
여기에 있어도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어하는 구름이 있다. 
























++

자까님이 떡밥을 주셨으니 한낱 잉여는 받아먹어야 제ㅋ맛ㅋ

세륜실습... 제발 사라져주세요 ㅠㅠㅠㅠㅠㅠㅠ 힘들어서 덕질도 못해먹게쩡 ㅠㅠㅠㅠㅠㅠ


덧글

댓글 입력 영역